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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생활기록부 이론 및 우수 사례 분석 칼럼] 세특 우수탐구사례 뜯어보기 3편: 르샤틀리에 원리로 완성한 당뇨병 진단키트

안녕하세요 해일입시연구소의 대표컨설턴트 주형서입니다!

이번 칼럼은 조금 특별합니다.
하나의 탐구가 1학년에서 끝나지 않고, 3학년까지 이어지며 완전히 다른 학문(생명과학)과 만나 확장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1학년 때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휠체어 바퀴'라는 주제로 탐구를 했고,
그 탐구가 남긴 미해결 문제를 3학년이 되어서야 DNA 컴퓨팅이라는 낯선 개념으로 풀었습니다.

1학년의 문제, 바퀴로는 풀리지 않았다

1학년 때 저는 길을 걷다 마주치는 보도 단차가 휠체어 이용자에게 큰 장벽이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단차를 모두 없애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대신 큰 힘 들이지 않고 단차를 넘을 수 있는 바퀴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휠체어 모형을 축소 제작하고, 원형뿐 아니라 정폭도형 등 다양한 모양의 바퀴를 장착해 단차를 넘는 데 필요한 힘을 하나하나 측정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바퀴의 장단점을 종합해 새로운 형태의 바퀴를 설계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 탐구는 두 가지 벽에 부딪히며 끝났습니다.
첫째, 단차를 넘기에 최적인 바퀴 모양과 평지를 편하게 이동하기에 최적인 바퀴 모양이 서로 달랐습니다.
둘째, 이 바퀴를 쓰려면 결국 휠체어 자체를 새로 구입해야 한다는 현실적 장벽이 있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바퀴라는 '하드웨어'로 접근하는 한 이 문제는 완전히 풀리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게 됐습니다.

책 한 권이 열어준 새로운 접근

3학년이 되어 의학유전학을 더 공부하려고 『내 생명의 설계도, DNA』(최재천 외)라는 책을 읽다가,
저는 전혀 다른 개념을 만났습니다.
DNA 컴퓨팅이었습니다.

DNA 컴퓨팅은 DNA를 정보 저장 매체이자 동시에 연산 장치로 쓰는 기술입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DNA는 A(아데닌)-T(티민), G(구아닌)-C(사이토신)로만 결합하는 상보적 성질을 갖고 있는데,
이 성질을 이용하면 서로 다른 DNA 가닥들이 화학반응만으로 스스로 이어 붙으며 수많은 조합을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즉 컴퓨터가 순서대로 하나씩 계산하는 대신, DNA는 시험관 안에서 가능한 모든 조합을 병렬로 한꺼번에 만들어낸 뒤, 그중 조건에 맞는 것만 골라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풉니다.

이 원리를 보는 순간 저는 1학년 때 못 풀었던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바퀴로 단차를 없앨 수 없다면, 애초에 단차가 있는 길을 피해서 안내하면 되지 않을까?
즉 '더 나은 바퀴'가 아니라 '더 나은 경로'를 찾는 문제로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최적 경로 찾기'는 정확히 DNA 컴퓨팅이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린 문제, 해밀턴 경로 문제와 같은 구조였습니다.

지도를 DNA 서열로 옮기다

해밀턴 경로 문제란, 여러 지점(정점)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한 번씩만 거쳐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경로를 찾는 문제입니다.
저는 학교 주변 지도를 이 구조에 맞게 옮겨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휠체어 이용자와의 면담을 통해 실제로 휠체어가 다니기 어려운 길과 장애물 유형을 파악했습니다.
그다음 지도 위의 각 지점(교차로, 갈림길 등)에 서로 다른 염기서열을 하나씩 대응시키고,
지점과 지점을 잇는 각 길에는 두 지점의 서열을 이어주는 상보적 서열을 대응시켰습니다.
이렇게 설계하면, 서로 다른 길을 나타내는 DNA 조각들을 한 시험관에 넣었을 때 상보결합 성질에 따라 조각들이 저절로 이어 붙으며, 지도 위에서 가능한 모든 경로 조합이 동시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만들어진 수많은 DNA 조합 중에는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것, 단차가 있는 길을 포함한 것도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중 조건을 만족하는 경로만 걸러내는 단계로 PCR과 전기영동을 끌어왔습니다.
출발지와 목적지의 염기서열을 각각 프라이머로 설정해 PCR을 수행하면, 출발지에서 시작해 목적지에서 끝나는 조합만 선택적으로 증폭됩니다.
그렇게 증폭된 조합들을 전기영동에 걸어 길이(즉 거쳐 간 지점의 수)에 따라 분리하면, 정해진 개수의 지점을 모두 거치는 길이의 DNA 조각, 즉 조건을 만족하는 해밀턴 경로만 밴드로 남게 됩니다.
그 밴드를 잘라내 서열을 해독하면, 그 서열이 곧 휠체어 이용자가 단차 없이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관점을 바꾼 순간

1학년 탐구와 3학년 탐구를 나란히 놓고 보면,
제가 배운 건 결국 같은 문제도 어떤 도구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풀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바퀴라는 물리적 구조로 문제를 풀려 했을 때는 단차용 바퀴와 평지용 바퀴 사이의 트레이드오프, 그리고 휠체어 재구입이라는 현실적 장벽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경로 탐색'으로 재정의하고 DNA 컴퓨팅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의 도구를 빌려오자, 새 휠체어 없이도, 단차를 없애지 않고도 문제를 우회할 길이 열렸습니다.

물론 이 탐구도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여건상 실제로 DNA를 합성하거나 PCR·전기영동을 수행하지는 못했고, 어디까지나 이론적 고안 단계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계하려 했습니다.
실제 지도를 바탕으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설정하고, 각 지점에 대응할 염기서열의 조건(상보결합 시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는 서열 설계 등)까지 고려하며,
이 프로그램이 이론적으로 작동 가능한 수준까지는 끌고 가려 했습니다.

탐구활동 특기사항 (원문 발췌)

(3학년/동아리활동) 1학년 때 진행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휠체어 바퀴' 탐구의 연장선에서, 상용화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인지하여 '휠체어 경로 안내 프로그램 개발'로 탐구를 심화함. 『내 생명의 설계도 DNA』(최재천 외)를 읽고 DNA 컴퓨팅 개념을 접목하여 해밀턴 경로를 찾아내고자 함. 휠체어 이용자와의 면담을 통해 이동이 어려운 길과 장애물 유형을 파악하고, 인근 지역의 지도에 목적지와 염기서열을 대응시켜 PCR과 전기영동으로 프로그램이 해밀턴 경로를 찾아내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설명함. 실제 구현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고안하였으며, 사회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이종 학문 간 융합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이 돋보임.

내가 얻은 결론, 그리고 후배들에게

이 탐구를 마치고 제가 얻은 결론은, 하나의 탐구가 끝났다고 해서 그 문제가 정말 끝난 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1학년 때 못 푼 문제를 서랍 속에 넣어두지 않고 3학년까지 가지고 있었기에, 전혀 다른 책에서 만난 개념과 연결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탐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실제 실험은 하지 못했고, 이론적 설계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3년에 걸쳐 하나의 문제를 꼬리에 물고 고민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는 숫자로 남길 수 없는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후배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이번에도 세 가지입니다.

첫째, 풀지 못한 탐구를 버리지 마세요. 미완성으로 끝난 1학년의 문제가 3학년 탐구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둘째, 문제를 다시 정의해보세요. '더 나은 바퀴'에서 '더 나은 경로'로 질문을 바꾸자 완전히 새로운 해법이 보였습니다.
셋째,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책 한 권을 읽어보세요. 생명과학 책 한 권이 공학적 난제를 푸는 열쇠가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풀지 못한 문제 하나가, 언젠가 뜻밖의 곳에서 답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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